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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염치를 아는 대한민국의 대학이 되기를 [직설] 2018-11-01
관리자 7

 

염치를 아는 대한민국의 대학이 되기를 [직설]

나는 대학에서 나온 사람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요란하게 대학을 그만둔 사람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면서 강의하고 연구하던, 내 청춘을 갈아 넣은 그 공간에서 스스로 나왔다.

‘지방시’라는 줄임말로도 알려진 그 책이 나왔을 때, 대한민국에서 젊은 연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특히 시간강사의 처우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때 언론은 “맥도날드에서 알바하는 젊은 교수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나의 이야기를 다뤘다.

나는 실제로 대학에서 6~8학점의 강의를 하면서 지역의 맥도날드 직영점에서 월 60시간의 물류상하차(메인터넌스) 일을 했다. 단순히 용돈을 벌고자 하거나 관심을 받고자 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서른두 살이었던 나는 대학에서 계속 강의하고 연구하고 싶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는 내가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비롯한 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실존적인 방편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대학이 보장해 주지 않는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고, 나의 노동을 사회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내가 대학에서 쫓겨났다고도 하고, 나에게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누군가는 대학 문을 박차고 당당하게 나왔다고도 한다.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지방시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그때 사용한 ‘309동1201호’라는 가명의 주인이 나(김민섭)라는 사실을 내부 구성원들이 먼저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전처럼 평범한 연구자로서 존재할 수 없을 것임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에만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마음먹기에 따라서 대학 바깥의 누구든 나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얻었다. 그때 나는 대학에서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가혹한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한 선배들이 있었다. 예컨대 유서라든가, 법적공방이라든가 하는 자신의 몸과 삶을 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SNS 공간에서 고백의 서사를 기록해 나간 거의 최초의 연구자였다. 이것이 대단히 특별하거나 잘난 일이었음을 증명하고픈 것은 아니다. 다만 달라진 시대는 어떻게든 한 공간의 평범한 인물을 추동해냈을 텐데, 무수한 지방시들 중 내가 무작위로 끌어올려졌을 뿐이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해 주어 고마워” 하고 말하는 많은 젊은 연구자들을 만났다. 덕분에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한 세대의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확신이 언제나 있었고 계속 나를 고백할 용기를 얻었다.

최근 ‘강사법’이 시행을 앞두고 대학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1년 이상 고용 보장, 건강보험 보장,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 지급 등 대학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담은 법이다.

2011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아직도 그 시행이 유예되고 있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대학이 시간강사를 해고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누구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시행을 앞두고 많은 내부구성원들이 여기에 저마다의 의견을 더하고 있지만, 대학에서 나온 지 이제 정확히 3년이 된 나도, 전직 지방시로서 굳이 말을 보태고 싶다.

아마 강사법이 시행되든, 다시 유예되든 대학에서는 그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 편법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대학은 원래 위법은 잘 저지르지 않아도 온갖 편법을 동원해 온 집단이다. 200명씩 수강하는 대형강의를 편성한다든가, 교양필수 강의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한다든가, 졸업학점을 낮추어 전체 강의의 수를 줄인다든가, 정규직 교수의 책임강의시수를 몇 학점씩 올린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시간강사를 이전보다 덜 고용할 것이다. 시간강사 당사자들도, 그 여파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는 정규직 교수들도 모두 대학의 대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그 이전에 진리의 상아탑이라든가, 지성의 전당이라든가 하는 단어로 스스로를 한껏 포장한 지금의 대학이, 거리의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보다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기를 바란다. 그에 더해, 거기에 영합해 그동안 편안하게 강의하고 연구해 온 정규직들이 조금은 부끄러워해 주기를 바란다. “강사들은 이제 많이 해고될 거야, 우리 학교는 절반을 감축한다고 하더라, 강사법에 찬성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지 고민해 봐” 하고 권위적인 말을 보태고, 교수회의에서 논의된 말들을 생중계하는 대신 자신이 지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다.

“학문후속세대가 이제 강의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라고 한 모 교수는 자신의 대학에서 강사 공채를 할 때 그 후속세대를 위한 쿼터를 넣을 것을 제안하면 되겠고, “비용이 필요하니 현실적인 법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 모 교수는 그 재원을 마련할 것을 자신이 속해 있는 대학과 정부에 촉구해야겠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 구조 안에서 착취를 당해온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조롱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에 나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한 문장을 써 두었다. 강사법의 시행 여부보다도, 우선 염치를 아는 대한민국의 대학이 되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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