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여러 때깔로 아름답게 교정을 수놓던 단풍이 바람에 날려 사라지듯 지금 사립대학들은 시간강사의 대량해고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지난 15일에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한 ‘시간강사 처우개선법’ 때문이다. 이 법은 처음으로 대학과 강사, 정부 삼자가 강사의 신분 보장과 처우 개선을 합의한 ‘협치 모델’이다. 강사들이 빨리 통과시키라고 농성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왜 이런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동안 한국 대학은 시간강사의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되어왔다. 과거 박정희 독재 정권은 그들에게서 교원의 지위를 박탈하여 공론장에서 배제하였고, 대학당국은 절반의 교육을 떠맡기면서도 그 대가는 교수의 10분의 1만 지급하였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들어 대학이 시장에 완전히 포섭되면서 이는 더욱 극대화하였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 김민섭 선생의 표현대로, 대학은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면서도 햄버거 가게보다 더 사람을 위하지 못하는” 장이었다.

 

이에 맞서서 강사들은 조직적으로 투쟁하였고 2010년에 조선대 강사였던 서정민 선생이 죽음으로 저항하였다. 이후 오랜 줄다리기가 행해지다가 결국 시간강사 처우개선법이 곧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내년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이 법에 따르면, 대학은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교원심사 소청권을 인정하며, 3년간 재임용 절차와 4대 보험을 상당한 정도로 보장하고,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하고 퇴직금도 주어야 한다. 부족하나마 모두가 이 땅의 시간강사들이 오랜 동안 염원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학은 이를 악용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시간강사 제로’를 목표로 최소한 절반 이상의 강사를 자르고 그들이 담당하던 강의를 전임과 겸임교수로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개설 과목과 졸업 필수이수 학점 줄이기, 전임교수의 강의 시수 늘리기, 폐강 기준 완화, 대형 강의와 온라인 강의 늘리기 등 여러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이는 단지 시간강사의 직업을 박탈할 뿐만이 아니라 학문 생태계를 붕괴시키고 대학과 국가의 미래를 포기하는 미친 짓이다. 강사들은 겨우 1천만원가량의 연봉을 받으며 갖은 수탈을 당하면서도 단지 학문 탐구가 좋아서 형극의 길을 감내하는 학문 후속세대다. 또 현재의 대학원생 대다수가 이를 감수하겠다고 나선 이들인데, 이런 짓은 아예 학문의 길을 봉쇄하는 폭력이다. 더불어 이수 학점을 줄이면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을 접할 기회를 잃게 되고, 현재의 강의 시수도 임계점인데 여기서 더 늘리면 교수는 학문 탐구를 하기 어렵다.

 

문제는 돈이다. 현재 시간강사는 7만5천여명에 이른다. 새로운 법을 적용하면 대학마다 대략 20억원에서 60억원가량의 재정이 더 필요하다. 전체 사립대학의 누적적립금이 8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1년 예산에서 0.01~0.03% 더 소요되는 것을 빌미로 강사 학살과 교육 개악을 자행하는 것은 스스로 교육기관이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10년에 걸친 대학등록금 동결 이후 단지 10억원일지라도 추가 재정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학교당국의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안은 어렵지 않다. 정부가 ‘사립대 강사 처우개선 예산’을 마련하여 ‘강사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대학에 지원하면 문제는 간단히 풀린다. 700억원이면 족하다. 전체 예산은커녕 교육부 예산 75조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껌값’이다. 국립대에는 1123억원을 예산안에 배정했지만 사립대학에는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는 단순히 인건비 지원 차원이 아니다. 대학의 미래는 그 사회의 미래다. 국가의 흥망은 대학과 비례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대통령의 용단과 정부의 배려가 절실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강사들은 두려움과 소시민주의에서 벗어나 조직화하여 저항하고, 전임교수들은 적극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