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9) [교수신문] 어두운 터널 속의 시간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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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12 10:11 조회1,663회 댓글0건본문
어두운 터널 속의 시간강사들
설 곳 없는 시간강사,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계방학에는 에너지 절약으로 시간강사실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 지방의 한 사립대에서 새학기 강의준비를 하려고 학교를 찾은 ㄱ강사는 영하 날씨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비단 이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 대학에 ‘대우교수·시간강사실’, ‘강사 수업준비실’로 마련된 시간강사들의 공간은 방학 동안에는 닫혀 있다. 그나마 시간강사를 위한 공간을 따로 둔 대학은 사정이 나은 편이고 이마저도 없는 대학들이 많다. ㄱ강사는 “막상 시간을 쪼개 학교를 와도 수업준비를 할 공간이 없어 ‘보따리장수’처럼 떠도는 신세다”라며 막막함을 표했다.
시간강사들의 마음을 얼게 하는 건 공간문제만이 아니다. 전임교수들의 ‘텃세’에 원하는 강의를 배정받기도 어렵다. 지방 사립대 소속 ㄴ강사는 몇 년 전 애써 준비해 놓은 수업이 신임 전임교원에게 배정되는 바람에 강의자료, 심지어 시험문제까지 모두 고스란히 넘겨준 적도 있다. ㄴ강사는 “전임교수들이 먼저 본인들의 강의 배정하고 난 뒤 남은 강의를 ‘선심 쓰듯’ 배정해준다”고 씁쓸히 말했다. 저녁 강의나 전공과 맞지 않는 강의를 맡을 때도 많다. 이는 수업의 질 문제로 직결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도 돌아간다.
대학 재정지원사업을 위한 각종 평가와 대학구조개혁의 바람으로 시간강사들이 설 자리는 더더욱 줄어들었다.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된 12개의 재정지원사업 중 11개의 사업이 ‘전임교원 확보율’을 평가지표로 포함하고 있었으며, 대학구조개혁평가 항목에 ‘전임교수 강의 담당 비율’ 점수가 반영돼왔다. 지난 28일 교육부는 ‘전임교수 강의 담당 비율’ 항목을 대학진단평가에서부터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학별 정규·비정규교수 현황을 조사해 올해 8월 발표하고, 차기 대학진단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대학들이 평가에 맞춰 ‘전임교수 강의 담당 비율’을 무리하게 늘리면서 시간강사들이 설 강의가 점점 더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 실제로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7년 2학기 전임교수의 강의 담당 비율은 66.7%(2016년 64.7%, 2015년 61.1%)로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였으며, 비전임교수의 강의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각종 평가를 의식해 전체 강의 수를 줄이거나, 졸업이수 학점을 줄여온 대학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여전히 1/3이상 심하면 절반 이상의 강의를 시간강사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임교수가 전체 45.1%, 비전임교수 54.9%를 차지했으며, 이 중 시간강사는 전체 39.7%의 비율을 차지했다.
“스스로도 부끄럽다.”, “복잡한 문제다.”, “나도 가까스로 시간강사 처지는 면했다.” 전임교수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간강사 문제는 이들에게도 무겁고 불편한 주제다. 일부 교수들은 시간강사들의 문제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경북지역의 한 사립대 A교수는 "시간강사 생활을 하는 주변인들의 열악함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교육역량 지원도 없고, 연봉도 훨씬 낮은데도 불구하고 강의평가는 똑같이 받을 때 더더욱 그렇다”며 대학 교원 구조의 불평등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하며, 시간강사들의 연구역량을 착취하는 전임교수들의 관행을 근절해야한다”며 소극적으로 의견을 내비쳤다.
“방치하면 학문후속세대 뇌관 된다”
시간강사 문제, 과연 이들만의 문제일까. 본래 취지와 달리 교육부와 대학, 그리고 당사자인 시간강사들조차 폐기를 외쳤던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이 법은 지난해 말에도 네 번째 ‘1년 유예’가 결정되면서 폐기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전임교수들은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데에 공감하고 있었다. 현실적인 개선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B교수는 “당장 임시방편으로라도 계약기간을 11개월로 하고, 최저임금과 4대보험 등 기본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해 줘야한다”고 제안했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를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국립대 인문사회계열 소속 C교수는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으나, 시간강사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네 대학의 운영체제, 학문체제의 개선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함께 다뤄야 할 것이다”라며 깊은 고민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대학의 시간강사는 근본적으로 별다른 수입 없이 장기간 교육과 연구를 수행해온 학문후속세대를 저임금으로 수탈하는 구조에서 야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해결의 실마리는 없을까. 전형적인 갑을관계의 구도 속에서 시간강사들을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과)는 “대학 시간강사들은 국내 지식노동분야 불안정 노동자다. 이들 직군은 지식수준이나 숙련도가 높은 직업이지만 독일 등 선진국과는 달리 그에 맞는 사회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면서 “정규교수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할 수 있지만, 시간강사 문제를 계속 방치하면 학문후속세대 문제의 뇌관이 돼 학문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시간강사 문제는 당사자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불합리한 대학사회 구조와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 그리고 전임교수들이 관행처럼 시간강사들에게 떠넘기던 가외노동 문제. 이 문제는 비단 오늘내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학사회는 조용하다. 취재 중 만난 일부 강사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혹시 공개돼 수업배정에 불이익을 받을까 발언을 주저하기도 했다.
주요한 포지션에 있는 정규교수들의 의식 개선도 필요하다. 시간강사들이 연구와 강의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대학과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행동할 시점이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난 지방국립대 ㄷ강사는 “대학적립금과 직원, 전임교수 인건비는 올랐지만, 비정규교수의 연봉은 오히려 줄어든 비참한 현실 속에서 전임교수들의 갑질, 대학 사회 당사자들의 침묵과 구조적인 편승이 오히려 시간강사들을 힘들게 한다”며 한숨 쉬었다. 대학 구성원들의 소극적인 행동과 무관심으로 시간강사 문제 해결을 위한 이들의 여정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 보인다.
최성희 기자 is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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