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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3) [경향신문:정동칼럼]평의원회 교수 비율 제한 ‘독소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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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05-12 09:34 조회1,5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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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평의원회 교수 비율 제한 ‘독소조항’

 

입력 : 2017.06.22 20:47:03 수정 : 2017.06.22 21:00:20

 [정동칼럼]평의원회 교수 비율 제한 ‘독소조항’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대학의 혁신은 교수가 나서야 가능하다. 이는 학생과 직원이라는 대학 주요 구성원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다. 학생을 잘 기르는 것이 목적인 교육기관에서 학생은 으뜸가는 존재이다. 또 뒤에 숨어 대학의 궂은 살림을 묵묵히 챙기는 직원의 노고를 놓칠 수 없다. 하지만 대학의 학문과 교육은 어디까지나 교수가 책임지며, 그런 의미에서 대학의 주역인 그들이 움직여야 실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오늘날 한국 교수들은 자신의 권익 보호만이 아니라 대학의 공공성을 지키고 연구와 교육의 질적 발전을 도모할 비전과 조직적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적어도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선 비정규직 교수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진 현실에서 대다수의 교수 조직이 정규직 위주여서 대학개혁을 위한 목소리가 협소한 전망에 갇히기 쉽다. 정규직 교수가 비정규직 교수와 연대하여 학문사회의 갱신을 이끌 때 비로소 대학개혁의 동력을 얻을 수 있고, 미래를 걸머질 대학원생의 탄탄한 지지로도 이어질 것이다. 

또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교수들의 학문적 내용과 방향이 대학의 혁신을 뒷받침하기에 미흡하다는 문제가 있다. 내년이 정부수립 70주년이지만, 우리 대학의 교수진은 해외유학파, 특히 미국 박사가 여전히 압도적이다. 소위 상위권 대학조차 교원 양성을 미국에 의존하니 대학원이 ‘미국 대학원 입시학원’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한국 현실의 구체적인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는 학문다운 학문이 성장하기 어렵다. 지적 식민주의라고 할 학문 풍토를 극복해야 교수들이 대학의 주역으로 당당히 설 수 있다. 

이와 같은 교수사회의 취약점은 대학 교원의 초라한 법적 지위와 동전의 양면이다. 지난 5월19일 국민의당 이동섭 의원의 대표발의로 사립대학뿐만 아니라 국공립대학에도 대학평의원회를 일괄 설치하기 위해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출되었다. 현행 사립학교법 시행령의 규정과 마찬가지로, 개정법률안 제7조 2항은 대학평의원회를 교원, 직원, 학생 중에서 11명 이상으로 구성하되, “어느 하나의 구성단위에 속하는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 정수(定數)의 2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교수가 대학의 주역이라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법조항이다. 현행 법률과 시행령은 교수가 평의원회의 과반수일 경우 자기 이해관계를 앞세울 위험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는 좀 예외적인데, 평의원 총 50명 중 학생은 없고 직원은 4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교수이다. 이런 편파적 구성을 시정하기 위해 2014년 2월13일 당시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낸 서울대법 개정안 제16조 2항 역시 “교원인 평의원의 수가 전체 평의원의 2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정치적 입장을 가릴 것 없이 국회는 교수를 평의원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면 곤란한 기득권 세력으로 보고 있다. 교수사회의 적폐가 깊긴 깊은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결기구 아닌 심의기구에 불과한 평의원회는 제 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더 큰 문제의 진지한 공론화는 뒤로 밀리고 만다. 

나는 평의원회에 학부생, 대학원생, 직원이 꼭 참여해야 하며 동문이나 지역 사회의 대표 등 외부인사도 적절하게 포함되어야 옳다고 본다. 그렇지만 동시에 대학의 학문과 교육을 책임지는 교수가 평의원회의 과반수, 심지어 3분의 2 이상을 구성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이제까지 교수들이 아무리 민주적 대학운영에 무관심하거나 미숙했더라도 평의원회의 교수 구성비를 제한하는 법 규정은 대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독소조항이다. 교수 아닌 평의원의 존재는 대학의 중요 안건 심의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자신의 권익 관련 사항 등 여타 안건은 학생은 학생회, 직원은 노동조합, 교수 역시 교수(협의)회에 맡겨야 옳다. 

그런데 대학운영에서 철저히 소외된 집단이 있다. 시간강사를 포함한 비정규직 교수들이다. 이들은 많은 학교에서 교양교육의 절반 이상과 전공교육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힘든 공부를 마치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총장 선출에 참여할 권리도, 평의원이 될 자격도 없다.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지만, 시간강사는 현행 고등교육법상 아예 ‘교원’도 아니다.

교수가 대학평의원회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굴욕적인 법률은 정년보장의 혜택을 누리는 정규직 교수들이 교원의 법적 지위조차 없는 비정규직 교수들을 외면해온 탓이다. 그 업보의 사슬을 끊어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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