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의 총장선거권 보장 요구 성명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9-04 16:57 조회1,008회 댓글0건본문
‘합의된 절차와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라
2019년 10월1일 비정규교수노조 부산대분회는 교수회관 앞에서 총장선거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경상대분회는 2020년 4월 강사들의 총장선거권이 배제된 후보자 선정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 경북대분회는 교수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강사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였다.
전국국공립대학생연합회는 2019년 10월 14일 부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직선제 투표 비율을 교수가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촉구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연합집회가 열렸고, 학생, 직원들의 투표장 점거, 선거 보이콧 등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결국 2021년 8월 31일 대학 총장을 직접 선거로 선출할 경우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정한다는 조항이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개정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로써 총장 선출에서 직원과 학생의 참여가 법률로 보장되었다.
그런데 총장 선출에서 직원과 학생 참여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닌 것이 이 개정안 이전에도 이미 직원과 학생의 참여가 일정 정도 보장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률이 개정된 까닭이 무엇일까? 총장 선거가 대학 내에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굳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한다는 바로 그 조항에 따라 교원, 정확히는 전임교원들만이 선거권을 가졌고, 직원과 학생들이 일정 정도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교원의 선의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임교원들은 온전히 1인 1표를 행사했으나, 직원과 학생은 그러지 못하여 갈등이 있었던 것이고, 그 해결방안이 법률 개정이었던 것이다.
이제 교원이 아니라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총장을 뽑으라는 것은 대학의 어느 한 구성원의 의사만으로 총장을 선출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선거제도를 만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역사에서 총장직선제는 대학 민주화를 상징하는 제도였다. 이명박 정부 때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려 했을 때 부산대의 고 고현철 교수가 자신의 몸을 희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2015년 당시 부산대 교수회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총장직선제의 복원이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대학의 자율성을 복원하고 수호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총장선거권은 이제 교육공무원법상 교원들의 배타적 권리가 아니다. 그동안 교육공무원법의 저 조항에 근거해서 교원들은 1인 1표의 권리를 행사해 왔지만, 나머지 대학의 구성원들은 제대로 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직원은 약 10%, 학생들은 약 4% 정도의 지분만 허용되었다. 강사들은 교원인데도 아예 참여 자체가 봉쇄되었다.
강사의 참여를 배제하는 사람들은 총장 선출과 관련한 법률은 교육공무원법에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교원’이 고등교육법의 강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그런데 교육공무원법 어디에도 ‘교원’에 대한 정의가 없다. 교원의 정의는 고등교육법에 있다. 따라서 교육공무원법에서 말하는 교원, 즉 총장을 직접 선거로 선출할 때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로 한다고 할 때의 그 교원은 교육공무원이 아니라 고등교육법에서 말하는 교원일 수밖에 없다.
강사는 고등교육법에서 교원으로 규정되어 있고, 그 임무는 전임교원과 마찬가지로 교육·지도 및 연구를 담당하게 되어 있다. 그러한 임무를 가진 강사가 대학의 핵심인 교육과 연구와 관련한 결정권을 가진 총장 선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설령 강사가 전임교원과 그 직분이 다를지라도 대학의 총장은 교육과 연구뿐 아니라 대학 내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이고 총장의 결정은 대학 전체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강사 역시 직원, 학생, 조교들과 마찬가지로 총장선거권을 가져야 마땅하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그러니까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전남대는 이미 강사가 총장선거권을 가진 ‘교원’인 것을 인정하고, 다만 강사의 임용 기간이 3년인 만큼 전임교원과 동일한 투표권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전임교원과 달리 1인 1표의 투표권을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학은 대학교육과 연구를 위해 강사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그것은 허락의 문제가 아니다. 권리는 허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강사의 총장선거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학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권리의 보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격이지 자질이 아니다. 강사의 자질을 따지자면 전임교원의 자질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이고, 보통선거는 있을 수 없다.
“직원과 학생들이 대학 운영에 관한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든지, “직원단체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성향을 보였다”든지, “직원과 학생들의 표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그들의 투표 반영 비율을 제한해야 한다”라는 발언들은 그래서 모두 이들에 대한 모욕을 넘어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강사들의 투표권을 봉쇄하고, 한편으로는 직원과 학생의 투표권을 제한하면서 교수들이 총장 선출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민주주의 선거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나는 전임교원이니 이만한 귄리가 있다”라는 것은 가진 돈의 액수에 따라 투표권을 부여하는 1원 1표의 시장 논리를 대학에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교육공무원법을 개정한 것이다. 대학의 총장은 대학의 교육과 연구, 행정 전반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총장은 교수들만의 대표도 아니고, 그러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교원, 직원, 학생의 합의된 절차와 방식’으로 선출하라고 법이 개정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쟁점은 누구에게 투표권을 줄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직무나 부문과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1인 1표의 동등한 가치의 표를 주는 것이 타당한가, 아니면 대학 운영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적절히 부문별 표의 지분을 배분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교수, 강사, 직원, 조교, 학생 모두 총장 선거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이에 찬성하건 안 하건,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제 대학인이 해야 할 일은 모든 구성원에게 1인 1표의 투표권을 부여할 건인가? 아니면 직무와 부문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지분을 인정할 것인가를 협의하여 합의된 절차와 방식으로 총장을 선출하는 일이다. 그것이 대학의 사회적 책무다.
2023년 9월 4일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